소리없이 사라진 함성, 대신에 탄식 섞인 탄성...
이 감성시대의 반성은 찬송, 양성보다 무서운 악성방송(...)
BIGBANG - STILL ALIVE/이승현(승리) 짤막 파트 중에서...
몇주 전에 늄늄시아님께서 쓰신 군대 이야기를 보고 생각난 김에,
저 역시 부끄럽지만 흑역사가 와장창하던 군대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일단 신검부터 시작해서 현재 예비군 3년차까지의 이야기가 될 듯하네요.
07년 4월에 신체검사, 그리고 8월에 재검하기까지
07년 1월 즈음, 경기북부병무지청에서 신검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다만 언제 신검을 받으라는 일자는 안 나오고 인터넷으로 예약하라는 통지서였지요.
(현재 신검 통지서를 받으시는 분들은 전부 예약 안내문으로 오는데 맞나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렇게 4월 즈음 되서 신검을 받아 신체는 2급(172/83)인데 비해 시력에서 3급이 나와 3급 현역 판정을 받았습니다.
본래는 집에서 공익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병무청에선 이마저도 모조리 롤백해서 끝내 3급 현역으로 받아들였지요.
이유가 뭐나면, 어릴 때 전반적 발달장애로 정신과에서 오래도록 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서
치료가 종결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공익판정이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 초기에 조금씩 벗어나는 바람에 치료가 종결되면서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서,
소견서에 진료 기록이다 뇌파 검사 기록이다 뭐다 해서 죄다 떼어왔지만 담당자가 하는 말이...
"치료가 종결되지 않았다면 정밀의뢰 판정을 내릴 수 있지만 아쉽게도 종결되서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뭐라고요? 결론은 공익 입대가 안 된다고요?
"음... 그러면 현역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고 차트를 내기만 하고 그저 무의미하게 현역 판정으로 끝나버려서 결론적으로 입대를 결정하게 됩니다.
(저 말, 8월 재검 때 나온 얘기였습니다... ㅠㅠㅠㅠ)
그토록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무의미한 대학 생활을 하다가(과대를 하다가도 까여서 얼마 못 가 자리를 내 준 적도...)
9월 즈음 병무청 공홈에서 모집병으로 운전병 지원을 결정했고, 10월에 12월 3일부로 입대 통지서가 떴습니다.
(대학생 초기에 운전면허를 미리 따 놓은 게 이득이었고, 12월 입대자가 많지 않아서 바로 영장이 나왔지요)
입대, 그리고 훈련병
같은 해 12월 3일 논산으로 입대할 때, 필자가 떠나면서 가족들은 끝내 슬픔을 참지 못하게 되고,
그날 휴게소에서 눈물 우동을 먹는 일이 벌어져 제 자신에게도 참담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당시 제가 있던 곳은 육군훈련소 30교육연대 3교육대 9중대 2소대.
이곳엔 중대장이 당시 원사(진), 소대장이 중사와 상사(진), 그리고 상사가 주를 이루었지요.
(제가 속한 소대장은 수류탄 담당 교관이었지요. 더구나 전 기수가 부사관 후보생 소대 ㄷㄷ;;)
웃긴 건, 훈련 때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했건만... 반항만 미친 듯이 해댄다고 욕만 줄줄이 먹었네요.
사격도 제대로 못해서 겨우 턱걸이(8발)를 치질 않나, 수류탄은 연습용으로 던져서 보충교육을 받질 않나,
더구나 크리스마스에 신정에 여러 번의 휴일이 끼는 바람에 훈련은 6주가 되어버렸지요.
그래도 좋았던 건 매주 일요일 종교행사 땐 연무대 성당에서 미사를 열심히 드리기도 했고,
첫주에는 가톨릭계에선 상당히 메이저의 인지도를 가진 그룹 '이노주사'의 공연을 보기도 했지요.
(당시 매달 첫 주에 연무대 성당에서 공연을 해왔던 점, 개인적으로 이노주사 노래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07년 12월 입대자에 한해서 20km 야간 행군으로 마무리했다는 건 의외로 대박을 쳤습니다.
이등병 파트 1 - 운전병 교육생
퇴소일(08년 1월 10일)에 필자는 연무대역에서 논산을 떠나 보내고 경상북도 경산으로 넘어가게 되고,
경산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간 곳은 2작사 예하의 운전 교육기관인 제2수송교육단에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기량 테스트를 받았으나 운전실력이 그리 좋지 않아서 그런지 5주 동안 중형차량 교육을 받게 되고,
그런 대로 운전교육을 열심히 받기도 했고, 그곳에서 욕을 먹어가면서도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다만 한 번 삐딱선을 타서 영창에 유급, 아니면 퇴교까지 갈 뻔한 상황이 있었는데,
그 전말은 간단합니다. 속해있던 중대에서 말썽을 제대로 피운 바람에 PX 통제 상태였는데
제가 몰래 PX를 갔을 땐 걸리지 않았어요. 문제는 몇 동기들이 걸려서 초필살로 욕을 먹어서,
전 식당에서 라면 먹고 돌아올 때 '왜 동기들이 당해야 되냐고...' 하면서 씩씩대며 가다가,
문을 발로 차면서 그 유리가 깨져버렸고, 그 결과 다음 날 중대 행정반에 끌려가 영창에 갈 위기에 처합니다.
교육이 끝나고서도 더블백 싸서 얼차려만 반 죽은 상태로 받다가 반성문을 빼곡히 채워서 내는 걸로 끝이 났지요.
그 뒤로 더 이상 기물을 파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성실히 교육에만 임하는 것으로 교육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등병 파트 2 - 전주 입성, 선임과의 마찰, RCT 돌발 행동
2월 18일 즈음, 경산역에서 대전역을 거쳐 익산역, 그리고 전주역에서 35사단으로 거쳐가고,
한 4일 정도 사단 보충대에서 지내다가 22일(EE일?!)에 완주군에 있는 106연대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주말을 거쳐 약 3.5일의 대기를 마치고 수송대에 전입하게 되고,
이와 동시에 본격적인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지요.
이때 사단 보충대 동기 중 한 명이 1월 군번에도 불구하고 연대 전입을 같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어색한 티가 쫌 나겠지만 적응하면서 말도 많이 나누고 그랬네요.
이때 와서 잘못한 걸 가지고 거짓말이 늘어나질 않나, 첫날 와서도 갈굼 먹질 않나...
군생활이 그리 순탄치 않아서 적응하기가 꽤 힘들었는데, 그때부터 악마라고 말하는
이른바 '찌락' 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는 최악의 사례가 생기기도 하네요.
(군생활도 제대로 못한 놈이 무슨 찌락이래... -_-;; ...는 훼이크;;)
고참은 물론이고 선임, 동기들과의 마찰이 잦았을 뿐더러 그 결과 RCT 당시 돌발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네요.
차량 소산을 자기 부대 쪽으로 해야 되는데 도리어 옆 부대로 소산했다가 오질라게 털려나갔었습니다.
(다만 RCT 때 사격은 의외로 점수가 좋아서 그걸로 만족할 수는 있었습니다)
일병 - 마찰 심화, 유격훈련 훡유, 끝없는 거짓말로 생활에 제동등 발동, 스트레스 심화로 담배 시작
일병 진급했다고 좋아라 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무한대의 욕을 먹으면서 시작됩니다.
더구나 진급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격훈련을 받게 되는데,
할 수 있을 땐 열심히 하는데, 4일차에 기구 훈련 도중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항의하다가 급기야...

"훡유..."
...를 안 보이게 날렸다가 조교가 어떻게 봤는지 결국 "너 이리와봐." 소리에 욕을 바가지로 쳐먹고 말았쥬 ㅡㅡ;;
그러다가 유격 끝나고 7월에 또 열심히 갈굼 세례를 받고 싸우고 별 짓을 다하며 지내다가,
한 번은 부모님께서 면회와 동시에 전주로 외박을 다녀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일병이 꺾이는 9월, 끝내 옷을 내어입고 군번줄을 안 차는 바람에 분대장이 불려 나갔고,
그 결과 끝없는 거짓말 배틀을 벌여 분대장의 권한으로 사지방 세탁기 전화 모조리 통제를 당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구제불능인 걸 알고 풀리긴 했는데 그래도 진상 부린다는 이유로,
평생 비운의 사나이로 지내다가 전역할 거란 선임들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네요.
그러던 어느 날 밸리댄스 공연을 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는지, 저녁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고,
저랑 부대원들 일부가 나가서 춤을 춘 덕분에(당시 원걸의 Nobody가 유행했을 때) 포상휴가도 얻었습니다.
한 가지 더, 여러 모로 스트레스가 더 커져서 담배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담배를 빼앗아 피는 행각을 저지르는 일을 벌이게 되기도 합니다.
(근데 욕을 안 먹은 건 참 이상한 듯...)
상병 - 부대일지 3개월 천하, 그리고 피박을 보고도 모자라 군산으로 떠나다
이때는 딱히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운전병 생활을 하다가 수송관이 너무 불안하다고 하는 바람에,
부대일지를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하길래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부대일지병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다행히 전지검 때 욕 하나 안 먹은 건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부대일지를 개판으로 썼다는 거...
화랑훈련 때 임실을 갔던 적은 있긴 하나, 브레이크를 제대로 안 밟아서 사고를 낼 뻔한 적이 있었네요.
그리고 5월 10일부터 19일까지 처음으로 1차 휴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부대 분위기가 삭막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부대일지 3개월 천하가 소대장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이마저도 짤리고,
동시에 운전병 선임들한테 잠도 못 잘 만큼 구타를 심하게 당한 데다
이 결과로 인해 지금까지 알던 사람들을 모조리 싫어하는 계기까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연대에서 생활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군산 장산도로 항했고,
그곳에서 전역할 때까지 운전병으로서, 그리고 그곳의 일원으로서 생활하게 됩니다.
병장 - 청소 열외 그런 거 없다, MG50 손질법 이제서야 익숙해지다, 그리고 쓸쓸한 전역
장산도에서 군생활을 할 때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아마 전역할 선임과의 마찰이었을 겁니다.
덕분에 싸울 뻔한 적도 허다했고, 연대로 복귀할 생각까지 했지만 그랬다간 전역해도
평생 나쁜 놈으로 찍혀가며 살아야 할 거라는 문제, 그리고 선임들 전역하니까 참자는 생각으로
그곳에서 조용하게 군생활을 했습니다(기동화 운용 일정 잡히면 그때 하나가 되겠다는 일념 뿐이었네요).
MG50이라는 기관총 손질법도 몇 달 못하다가 나중에 와서야 좀 익숙해지고 그랬던 듯합니다.
(MG50 사격 때에도 운행을 나가기도 하고, 소초에서 떨어진 중대로 가기도 하고...)
2차 휴가 때에 놀 땐 놀고 집에서 쉴 땐 쉬기도 했던 그런 날이었네요.
문제는 복귀 당일 먹을 거 사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갔다가 늦게 도착한 게 잘못이었지...
그리고 5박 6일 보상 휴가도 다녀오기도 했었네요.
그리고 말년 병장이 되어서도 할 때 끝까지 다 해놓고 가겠다는 일념에,
차량에 있는 체인 수입도 할 수 있는 대로 미리 끝내 놓고,
월장비 운행증 정리도 확실하게 해서 말년 휴가도 다녀 오고 그랬습니다.
말년 복귀 후에 하루 대기 때 기동화 운용을 같이 나가서 뒷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안 가서 잠 좀 잠깐 자다가 대대로 가는 5/4톤 트럭을 타고 대대장에게 전역을 신고하고 나왔네요.
다만 기지장님을 못 보고 전역한 게 안타까웠지만, 조만간 전국일주를 마치고 연락을 취해서 만날까 합니다.
안부도 여쭐 겸 장산도의 변화가 어떤지는 봐야 알겠지만요(만일 기지장이 바뀌었다면 더 안타깝겠지만...).
예비군
현재 예비군 3년차로 회천1동대에 속해 있습니다. 다만 작년 한 해만 경민대학교 예비군대대에 속해 있었지요.
아마 내년에 다니던 학교의 학사과정으로 편입해도 회천1동대 소속 그대로 남아서 훈련을 받을 계획입니다.
1년차인 2010년에는 3월과 10월에 각각 향방작계를 받고, 11월 초에 무박 3일 간 동미참 훈련을 받고,
2년차인 작년엔 고암동에 위치한 의정부시 예비군훈련장에서 하루 동안 받고 끝났지요.
3년차인 지금, 3월에 이미 향방작계를 받은 바 있지만 문제는...(다음 짤막한 글에서 계속됩니다. 거기서 봐주세요;;)
결론이 뭐나고요?
군대는 일찍 다녀와야 됩니다. 선임과의 마찰이 싫더라도 꿋꿋이 이겨내면서 다니는 게 더 좋지요.
박주영이나 MC몽 그리고 스티붕유마냥 병역기피했다가 누리꾼들한테 털리는 것보다,
아니면 싸이마냥 "예비군 통지서와 입영 통지서를 동시에 받아 본 적이 있냐(싸이 - 싸군 중에서)"를 듣고
군대를 두 번 갔다 오는 꼴이 되기 싫다면 확실하게 다녀 오는 게 좋습니다.
성인기 중 어릴 때인 스무살에 다녀오면 사회생활도 일찍 시작할 수 있다는 점, 알아두세요 'ㅅ'/
짤막한 글로 쓰려 했다가 글이 길어졌네요. 타고난 것도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많이 거쳐갔던 군대,
이제는 긍정적으로 활약했던 부분 만큼은 추억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그저 훌훌 털어버리고 지내는 게 더 좋겠지요.
잡스의 영향을 덜 받아서 헛감성이 없는 건 아니고(퍽!!!) 그저 열심히 살아보려는 RB입니다.












덧글
전역이 10월 29일이었는데 전역 대기 당일에 기동화 뛰면서 후임 운전병에게 인수인계 간단하게 마치고 전역하기도 했지요.
08년 6월에 전역이셨으면 06년 6월 군번이실 텐데 ㄷㄷ 그래도 여기서 보고 알아봐주셔서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ㅅ'
아, 혹시 님께서 계셨을 때 선경민 씨 있지 않았던가요? 제가 연대에 있었을 때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이후 후임 운전병으로 제 아들이나 다름없는 08년 11월 후임이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장산도에서 올 경우나 1중대로 갈 때만큼은 운전병들을 전부 보게 되기도 했고요.
동원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동미참을 다녀 오셨다니 고생하셨어요 'ㅅ'/
8레이다 병사시절이 생각 나는군요 ㅎㅎ
그때 행보관님과 티오디반장님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행보관님은 전역하시고 반장님은
인천으로 가셨는데
비응도 기지에서 바라보던 바다 전경과 격포에서 보던 서해안의 바다가 그렇게 예쁜줄 몰랐었죠 ㅎㅎ
전 연대 시절이 가장 오래됐고 장산도는 얼마 안 됐지만 그런 대로 싸운 거 아니면 별 탈 없이 지냈지요.
비응도에서 보는 서해안의 바다는 풍경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중대 화기소대여서 장산도에 자주 파견 갔었지요~
저랑 전역일 10일 차이나니까 아마 같이 생활 했을 수도 있겠네요~(말년때 장산도에 오래있었으니까요~)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얼굴들만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제가 말년에 연대가 아닌 장산도에서 전역했으니, 어렴풋이 본 기억이 나는 사람들은 몇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